[과학칼럼] 마무리 투수와 거북이가 필요한 과학기술계

2012년 2월19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공학박사 조영조

작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우승하게 된 것은 선발투수와 계투진도 좋았지만 오승환이란 걸출한 철벽 마무리 투수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마무리의 공로로 그가 한국시리즈 MVP를 받게 된 것을 모든 야구팬들은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가 정보통신 제조업 분야에서는 특유의 치고 빠지는 토끼 전법으로 선두권을 달리고 있지만, 꾸준히 끈기를 갖고 거북이처럼 도전해야 할 원천기술 기반의 바이오산업이나 소프트웨어산업 등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다는 사실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최근 슬로우 템포로 마무리 짓은 일들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늠할 수 있는 보고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4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은 2011년도 국가과학기술혁신역량 평가에서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에서 10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 평가는 지난 2006년부터 매년 과학기술혁신역량을 자원, 환경, 네트워크, 활동, 성과 등 5개 부문에서 31개 지표로 추려내고 OECD 30개국을 비교 분석해 산출한 결과이다.

종합순위는 10위로 중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연구개발 투자와 창업으로 대표되는 활동부문이 6위로 상위권을 차지한 반면에 과학기술 주체들 간의 협력을 다루는 네트워크부문과 지원제도 및 문화를 포함하는 환경부문에서 각각 19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재빠른 대응으로 해결될 수 있는 과학기술 투자,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 연구원 수 등에서는 최상위권에 있으나, 느려도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한 지원제도, 국제협력, 인구 중 이공계 박사 비율, 1인당 SCI 논문 수 등은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Science Citation Index)에 등재되는 논문은 질적 수준이 높아 제출에서 등재까지 보통 2~3년의 시간이 걸리게 되어 있기 때문에 단기적인 연구개발로는 결과를 내기 어려운바, 이번 평가에서 꼴찌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었다. SCI 논문의 저자는 주로 이공계 박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구 중 이공계 박사 비율이 23위에 그치게 된 것도 나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결과는 최근 과학기술 콘트롤타워가 없어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이 원활하지 못했고 연구개발 지원제도 또한 너무 단기적 성과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데 대한 부작용으로 보인다. 실용만을 너무 강조하여, 중장기적인 기초원천 기술개발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중요도가 비교적 떨어졌고, 거의 모든 연구개발은 중단기 사업화를 목표로 한 지식경제부의 산업융합원천기술 개발에 집중하게 된 결과인 것이다.

더구나, 모든 산업융합원천기술 개발과제는 매년 연구실적의 상대평가로 15%를 탈락시키고 그 재원으로 새로운 과제를 발굴하는데 사용하고 있어서, 매년 결과를 어떻게 잘 보여줄까에 치중하게 되고 계획된 연구기간을 다 채우는 것이 참 어려운 실정에 있다. 야구로 치면 선발투수만을 양산하고 마무리 투수는 필요 없다는 식인 것이다. 또한, 중단기적인 사업화에 치중하기 때문에 SCI 논문이나 핵심적인 기초원천 특허의 확보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발 빨리 대응하는 토끼 같은 연구자들이 각광을 받고 시간이 지나 더 훌륭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묵묵히 일하는 거북이들은 거의 도태될 지경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선진국 대열 속에 우뚝 서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과학기술혁신역량을 장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현재 10위 권에 있는 것도 역량 발휘를 잘 한 것이지만, 앞으로 더 부강한 나라가 되려면 과학기술계에서도 선발 투수를 받쳐주는 마무리 투수는 물론, 환경 변화에 발 빨리 대응하는 토끼와 함께 살며 최종 목표를 향해 뚝심 있게 정진하는 거북이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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